문헌정보학과 2017-09-04 14:16 337
아키비스트의 눈 (칼럼 2017-11)
2017년 국가기록원 기관평가 결과 발표에 대한 생각
“국가기록원은 기관평가를 폐지하는 것이 어떠한가?
10년간 갑질했으면 많이 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고양이
2017년 8월 16일에 국가기록원은 기관평가에 대한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발표하였다. 그 대상 피평가자인 글쓴이의 느낌은 상당히 씁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최근 예능프로에서 거론되어 포털사이트 검색순위에 오른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묘하게 떠올랐다. 20여년 전에 쓰인 글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어쩌면 많이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기록학을 공부하고, 혹은 기록관리 실무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본질적인 부분은 크게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문(名文)으로 일컬어지는 글의 형태를 살짝 빌려서 내 가치관과 생각의 일부를 표현하고자 한다. 저작권 문제나 표절시비는 없기를 바란다.
먼저 이 글은 글쓴이와 글쓴이가 속한 기관이 받은 등급에 대한 부당성과 이의제기를 하려는 의미에서 쓴 글이 아님을 밝힌다. 사실 공문을 받지 못해 왜 저런 등급으로 평가결과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평가제도 자체가 가진 문제점과 적용에 대한 문제, 그리고 운영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기록관리학을 공부하면서 읽은 몇권의 기록관리 법령해설서는 기관평가에 대하여 기관의 기록관리 업무체계를 마련하고 표준을 적용하는 등 도움을 주기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최초 실시된 2008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기관평가’라는 단어는 현장에서 일하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비롯한 업무담당자들에게 업무에 도움이 안되고, 평가 점수를 받기위해 하는 ‘울며 겨자먹기, 억지춘향식’의 어떤 것이 되었다. 기록관리 업무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기관에서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을 채용하고, 문서고를 확보•정비하고 서가, 항온항습기, 소방장비를 설치하는 등의 개선효과라는 공(功)도 있다. 그리고 제도 자체와 운영상의 문제가 있으니 개선해야 한다 말하는 이들과 그가 속한 기관에는 평가 등급과 점수를 가지고 횡포를 부리고 그 담당자의 상급자에게 전화로 을러대는 갑(甲)질을 해온 전력이 있다.(국가기록원 입장에선 의견을 청취했다고 하거나 부탁이나 요청했다는 반응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당하는 일선 기관의 담당자 입장에서는 경고라거나 협박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다.)
기관평가가 실시된 후로 기관의 업무담당자들이 한 발언들과 각종 발표자료, 학술논문에 공통적으로 나온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평가제출 및 발표시기가 전혀 현실적인 의미가 없다. 기관 사정상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기록관리 법령에 나왔다는 이유로 모든 업무를 1년 안에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것으로 바꿨다. 기록관리 법령에서 다룬 업무가 실제로 현장에서 필요한 것인지 그에 대한 문제점은 없는 것인지 기록학계나 현장의 전문요원들과의 소통이 전혀 없이 ‘국가기록원의 소속위원회와 담당자’의 탁상공론과 불투명한 근거에 의거하여 10년동안 진행되어 왔다. 지표 하나 하나를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이야기가 많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장에 배치된 전문요원이 기록관리 업무를 하려고 하니 기관평가 때문에 업무 체계도 안 잡히고, 도움도 안되는 상황이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기록관리 법령이 기관현장의 주된 법령들과 부딪치고, 기관업무 특성과 현장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기록물법에 있어도 ‘이렇게 해석해서 평가로 적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지?’ 의아한 지표도 많다. 대표적으로 1기관 1인의 전문요원이 대부분인 기관에, 1명이 일하는 것은 안되고, 2인 이상 기록물관리 업무를 맡으라고 하는 것은 이상만 있고, 현실은 무시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근거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또, 처리과가 적은 곳에서는 비전자기록물을 기록관으로 이관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처리과 수가 수십-수백개 되는 곳에서는 이관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기껏해야 %로 점수를 매기는 지표를 보면 한숨이 절도 나온다. 그리고 안되면 이관보류를 요청한다는 문서를 남기라는 식의 지표도 있다. 심지어 국가기록원도 대량 동종기록물을 이관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이걸 일선 기관에 강요하는 것은 정말 아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직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관평가를 위해 필요 없는 일을 할 때 마다, 내가 이러려고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되었나 싶은 자괴감이 드는 참담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2016년부터 2017년 8월 현재까지 겪고 부딪친 부분에 대해서 잠깐 거론하자면, 행정에서 말하는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어긴 부분, 적정한 규모에서 일을 집행하라는 것을 어긴 부분도 많다. 전년도 담당자가 하라고 안내한 부분과 다르거나 평가자료집에 제시한 적도 없으며, 이전 평가에는 제출하지 않은 자료를 요구하거나,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경우도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것이다. 이전과의 연속성도 없고, 무엇에 근거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게 하는 것은 국가기록원이라는 행정기관의 기관평가제도라는 행정 자체를 신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기록물법령과 지침 등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을 현장의 전문요원이나 담당자들에게 의견수렴이나 협의도 없이 국가기록원이 임의대로 평가지표로 적용한 것도 매우 많다.(물론 전체기관도 아니고 특정 몇몇 기관을 대상으로 금요일 퇴근 직전에 이메일을 보내서 화요일까지 산하기관의 의견 수렴해서 제출하라고 한 것도 의견수렴이라고 우긴다면 그건 국가기록원의 말이 맞을 것이다.)
올해 부각된 문제점 중 하나는 국가기록원 평가담당자의 전문성 문제다. 물론 이전에 겪은 담당자들이라고 해서 딱히 소통이 잘 된 것도 아니었고, 현장의 사정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2017년도 평가 담당자들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인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 현장에서 기록관리를 해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글쓴이가 평가담당자들의 개인정보를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잘못 안 것일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말을 하자면, 기록물법령을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대화에서 느낀 단절감은 ‘벽도 이런 벽이 없다’ 싶을 정도이다. 기관의 현실을 모르는 이들에게 아무리 현장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설명해도, 들으려는 자세도, 소통하고 교감하려는 마인드는 보이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왜 국가기록원이 기관 말을 듣는 것만이 소통이냐? 기관에서 국가기록원의 말을 듣는 것은 소통이 아니냐’는 식의 발언에 답답합을 정말 심하게 느낀 과정이었다. 그리고 국가기록원 담당자들이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의제기가 많은 것이 섭섭하다는 반응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란 ‘타인의 관점에서 성찰하지 않는 자가, 상부의 권위와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한 것’ 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막말로 국가기록원이 기관평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현장의 기록물관리 전문요원과 담당자는 더 힘들어지고 기관의 기록관리가 더 나빠지는 것 같다.
올해의 과정과 국가기록원의 보도자료를 보면서 느낀 것은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가기록원은 바뀌지 않는구나. 현재까지는 바뀌려는 의지가 없이 구태를 따르는 구나’ 였다. 2017년 5월에 취임한 대통령의 취임사에 나온 대로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것인가? 최소한 2017년 8월 현재 국가기록원의 기관평가 부분에 대해서는 아닌 것 같다. 국가기록원과 그 담당자들이 열심히 한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으나, 초기의 목적을 벗어나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기관의 전문요원들에 대한 통제와 업무강요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 현재의 모습인 것 같다. 비유하자면 처음 설정한 지향점은 잊어버리고,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탑승한 승용차 면허를 가진 운전자가 전문장비를 운행하게 되었는데, 바깥 상황에 대해 알려주는 것을 무시하고 낭떠러지로 빠르게 가고 있는 상황에서 ‘난 잘 하고 있으니, 너희는 아무 말없이 그냥 따라와라!’ 외치는 것 같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신임 국가기록원장을 외부의 개방형직위로 뽑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국가기록원장이 되더라도, 지난 10년의 공과는 떨쳐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목적도 방법도 잘못 설정되고 집행했던 많은 정책 중 대표적인 것이 기관평가라 본다. 신임 국가기록원장은 기관평가를 폐지하고 다른 방법을 찾거나, 정 기관평가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 다면, 국가기록원의 체질 개선 정도가 아니라, 가죽을 모두 벗기고 바꾸는 혁신(革新)을 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뼈와 틀을 바꾸는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하는 것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받는 국가기록원의 나아갈 길이라 본다. 이제 믿을 것은 신임 국가기록원장 밖에 없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씁쓸하다.